AI 시대, 인간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아 떠나는 항해 – 게리 그로스먼이 전하는 ‘휴먼 하버’의 지혜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할까요?”, 아마도 그 답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게리 그로스먼(Gary Grossman)은 이에 대한 성찰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에 흔들리는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우리가 향해야 할 목적지를 ‘휴먼 하버(Human Harbor, 인간의 항구)’라는 단어로 그려냈다.
거울 속 비친 나, AI가 만든 새로운 자화상
AI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언어와 감정, 창의력이 통계적 알고리즘 속에 녹아들며 반영되고 있다. 그로스먼은 이런 AI를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신을 보며 도취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반영인 AI에 몰입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 반영은 완전하지 않다. 알고리즘의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우리를 부드럽게 달래며 ‘유사한 의미’를 제공하는 존재. 우리는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점이다.
정체성의 붕괴와 인간 대체의 두려움
기업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한 AI 에이전트 도입에 몰두하며, “인간을 더 이상 고용하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진단 시스템은 숙련된 의사들보다 네 배나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며, 인간의 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하지만 이 흐름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의미까지 잃는 것”, 그것이 진짜 공포다. 조 로건과 버니 샌더스가 나눈 대화처럼, “기본소득이 있어도 의미를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현실이 되어간다.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 ‘인지적 이주’를 받아들이다
기술 발전은 인간의 내면을 향한 깊은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로스먼은 이를 ‘인지적 이주(Cognitive Migration)’라 부른다. 빠른 기술 도입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시기를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순례자의 여정’으로 묘사하며, 혼란 속에서 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한 내면의 항해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구조, 그리고 인간적 연결을 위한 새로운 설계
하지만 이 여정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야 할 구조, 제도, 그리고 공동체 속 연결이 필요하다. 기계는 연민하지 않고, 가치를 느끼지 않으며, 죽음을 애도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그로스먼은 ‘휴먼 하버’를 단순한 은유가 아닌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기반으로 제시한다. 이는 단지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는 호소다. 예를 들어, AI 시대의 부가가치를 활용해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교육과 보육, 의료 등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잃어서는 안 될 중심
학자 빅터 프랭클은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은 ‘삶의 의미’에 있다고 말했다. 그로스먼 역시 이를 강조한다. AI는 생각을 흉내 낼 수 있으나, ‘가치를 선택하는 마음’, ‘함께 하는 연대감’, ‘공감의 눈빛’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I가 모든 영역을 재편해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항해의 초입에 서 있다. 그 여정은 빠르지 않을지라도 혼란스럽고, 때로 외로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AI 시대에 어떤 의미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게리 그로스먼의 말처럼, 우리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항구는 우리 스스로 만들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그 첫걸음은 인간다움을 잊지 않고, 오늘 옆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하자. 휴먼 하버는 기술의 끝이 아니라, 가치의 시작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