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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흔들리는 교실의 풍경

AI와 함께 흔들리는 교실의 풍경

AI 세대 교육 붕괴인가 진화인가 —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교실이라는 문화 현장의 갈등과 사유

기술은 언제나 예술과 교육의 경계를 시험해왔다. 하지만 최근 Longreads에서 게재된 Jason Koebler의 인터뷰 기사, 「Teachers Are Not OK」는 이 실험이 이제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교실은 더 이상 전통적 지식 전달의 장소가 아니며, 문화적 정체성과 사고 능력을 둘러싼 갈등의 최전선이다. 학습 공간은 지금 ‘창조’와 ‘복제’, ‘비판’과 ‘소비’ 사이의 균열을 몸소 겪는 새로운 문화현장의 얼굴로 거듭나고 있다.

인공지능, 교육의 ‘도구’인가 ‘위협’인가

많은 교육자들은 AI의 등장을 단순한 기술적 변화로 보지 않는다. 기사 속 교사 John Dowd는 “협의도, 배려도 없는 기술 주도자들의 행보”라고 그 현실을 비판한다. ChatGPT가 교육현장에 미친 영향은 단지 편리성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독립적 사고의 훈련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변형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교사의 탄식은 획일화된 정보 소비가 ‘생각할 이유 자체’를 제거하고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알고리즘 문화가 만든 두 계급 — ‘창작자’와 ‘수용자’

Koebler의 인터뷰는 AI 논의를 전례 없는 문화적 층위로 끌어올린다. ChatGPT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수동적 내용 수용’이 사회적 표준이 되어가는 현상의 상징이다. 영상 플랫폼과 SNS가 주도하는 알고리즘 중심 문화는 일부를 ‘콘텐츠 생산자’로, 대다수를 ‘피동적 소비자’로 전락시켰다. 이는 교육뿐만 아니라, 문화의 민주성과 창조성 또한 잠식한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가 경고한 ‘스펙터클 사회’가 오늘날의 디지털 교육과 정확히 조우한 셈이다.

AI 교육 사용의 모순 — “잘 쓰면 괜찮다”는 신화

기사 중 인상적인 장면은 학생들이 AI에 대해 “제대로 쓰면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떻게’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이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 리터러시가 전무하다는 신호이자, 표면적 유용성에 매몰된 세대의 문화적 언어 빈곤을 드러낸다. AI를 다루는 학문적 수준조차 그 윤리적 훈련 없이 남용되고 있는 현실은, 단지 기술 교육의 실패만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판단’이라는 문화적 감각의 실종을 시사한다.

AI 시대의 교사, 예술가적 존재로서의 전환

오늘날의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혼란 속에서 의미를 재조합하고 창의적 감수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문화적 큐레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곧, 교실을 지식의 소비 공간에서 경험과 사유의 장소로 다시 전환하는 시도다. 예술이 언제나 그랬듯, 교육도 다시 균형과 저항, 질문과 의미의 차원으로 되돌아가야만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 “포스트-AI 시대의 인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사유해야 할 가장 절박한 문화적 명제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AI 기술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영향에 대한 자각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독자라면 지금 접하고 경험하는 모든 플랫폼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자. 관련 전시나 비평(예: AI 아트 논쟁, 교육과 윤리에 관한 학술 토론 등)을 찾아 참여하거나, 교육 현장에서의 AI 사용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질문하는 능력이 우리 일상의 문화를 재건하는 첫 단추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는 내일의 인격이고, 그 안의 비판력은 곧 우리의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