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of Things’가 기록한 시대의 상흔 – 시인 도니카 켈리의 시선과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감정들
대개 시는 시대보다 조용히 흐르지만, 때때로 시는 시대의 균열을 응시하며 날카로운 기록자가 된다. 미국 시인 도니카 켈리(Donika Kelly)의 신작 시집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그런 시집이다. 작가가 집필을 시작한 시기는 그녀의 첫 교단에 서던 해이자, 미군 드론 공격이 중동 지역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떨어지고 있던 시기. 전쟁은 멀리 있었지만, 그 그림자는 교실과 책상 위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켈리는 이 시집을 통해 전쟁, 권력, 개인의 기억이라는 복잡한 요소들을 직조하며 오늘날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감정의 지층을 파고든다.
이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시는 어떻게 냉혹한 현실을 껴안고 그 너머로 우리를 이끄는가?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단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것을 감각적으로 재배열하며 기억과 책임의 윤리를 되묻는다.
삶과 죽음 사이, 시가 기록한 정서적 진실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정치적 사건을 개인의 정서로 번역하는 시적 감각이다. 켈리는 드론 공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 일상에 미치는 심리적 파문을 참조하며, 관습적 시어를 넘어선 감각적으로 촘촘한 문장을 선보인다. 무심한 하늘 아래 점점이 흩어지는 생명들, 그리고 그 생명에 응답하는 시인의 마음은 마치 “자연의 이치”처럼 조용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런 맥락에서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반전(反戰)의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슬픔과 연민이라는 감정의 정치학이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과연 인간의 질서란 무엇인가? 누가 그것을 정의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첫 교단에서 탄생한 시 – 교육자와 시인의 이중 시선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시집이 시인의 첫 해 교직 경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자로서의 삶은 도니카 켈리에게 질서와 명료함을 요구했지만, 그녀의 시는 그 이면의 혼돈을 직시했다.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시간 속에 들려온 전쟁 뉴스들은 켈리의 시에서 내면화된 세계사의 파편들로 새롭게 숨을 쉬었다.
교육 현장과 전쟁, 이 두 세계의 역설적 병치는 이 시집에 일종의 윤리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존재의 다층성을 시적으로 드러내는 창작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질서’라는 아이러니 – 언어와 권력에 대한 비판
시집 제목인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자연의 이치’라는 뜻이 함의하듯, 이 표현은 종종 기득권의 권력 유지 논리로 활용된다. 켈리는 이런 용어가 어떻게 폭력의 정당화 도구로 전유되는지를 언어적으로 해체한다. 죽음이 일상이 되고, 폭력에 무뎌진 세계에서 자연이나 질서라는 말이 지닌 아이러니는 작품 전반에 불편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녀의 시는 단순히 선언적이지 않다. 오히려 은유와 파편화된 이미지들로 구성된 텍스트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멈추고 다시 읽게 만드는 사유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21세기 시의 새로운 윤곽 – 도니카 켈리의 자리매김
현대 미국 문단에서 도니카 켈리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하나다. NPR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써 내려간 시가 "단지 증언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정서적 응답을 담는다"고 말하며, 시의 감정적 진실에 무게를 실었다. 단순히 정보 전달이나 고발이 아닌, 개인적 전율과 감정의 정오(正午)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켈리를 동시대 주요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자전적 요소와 시대적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더 이상 무감각해서는 안 될 감정들을 수면 위로 떠올린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시집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현대인의 감각을 깨우는 사회적 알람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시집을 통해 시대의 그림자를 다시 응시하는 것, 시를 매개로 각자의 내면을 청진하는 것, 그리고 도니카 켈리처럼 불편한 진실을 감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The Natural Order of Things』는 국내에서는 아직 정식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서로도 충분히 깊은 감상의 여지를 제공한다. 현대시와 정치, 감정의 교차점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시집을 탐독해보자. 더 나아가, 시인 도니카 켈리의 인터뷰(예: NPR 'All Things Considered' 2025년 6월 11일 방영분)도 감상해 보면 그녀의 문학 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