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즐과의 시선 교환'이 던지는 생존 너머의 삶 – 애니 딜러드의 생태적 사유와 현대인의 존재 회복
삶을 살아가는 법을 자연에게서 배울 수 있을까? 에세이스트 애니 딜러드는 1982년 발표된 에세이 「Weasel」에서 이 질문에 시적으로, 철학적으로 대답한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위치한 작은 연못에서 한 위즐(족제비)과 마주한 짧은 순간, 그녀는 문명과 사고의 굴레를 벗고 존재의 본질로 진입한다. 인간 중심주의적 감상이나 인공적 서사 없이, 한 생명체가 본능에 따라 '필연적'으로 살아가는 감각을 관조하는 이 텍스트는, 오늘날 소비주의적 문화 속에서 자기 상실을 겪는 현대인에게 무언의 반문을 던진다. 무엇이 우리를 진짜 살아있게 만드는가?
도심 속 ‘야생’에 대한 시적 인문학
딜러드가 마주한 위즐은, 종교적 상징이나 생태적 경고가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욕망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으며, 그저 "필연 속에서 산다." 딜러드는 이 의식 없는 생존의 태도에 경외를 품는다. "우린 선택 속에 살고, 그것을 증오하며, 결국 필연의 발톱 아래에서 죽어간다." 이 한 문장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과잉의 삶—끝없는 비교, 불안정한 정체성, 선택의 피로—을 정면에서 지적한다. 이는 복잡한 인간 심성을 선형적 서사로 단순화하는 현대 자기계발 담론이나 도덕적 교훈과는 차별되는, 감각 경험을 매개로 한 순수 사유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
경험적 앎과 존재적 감각의 재구성
지각과 사유는 반드시 언어나 논리로 귀결되어야 할까? 딜러드는 '응시'라는 비언어적 접촉을 통해 그에 반기를 든다. 위즐과의 대치는 마치 기억도, 맥락도 없는 한순간의 시공간 붕괴를 감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시선이 교차하며, 열쇠는 버려졌다." 이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진실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상상력을 ‘낮 동안의 합리성을 해체하는 꿈의 에너지’로 봤듯, 이 장면은 현실을 지탱하는 구조의 틈을 찢고 내면의 생명 감각을 일깨운다. 이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이성과 감성, 주체와 타자, 문명과 야생의 경계를 질문하는 리트머스라 할 수 있다.
생태 감수성과 사유적 삶의 전개
21세기 예술에 있어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존 이후의 감각과 존재의 이유를 사유하게 하는 철학적 모티프로 부상하고 있다. 딜러드의 에세이는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사피엔스 중심의 사고가 아닌 다종(多種) 생명체와의 공존적 감각을 요청한다. 특히 그녀는 "기억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지각하며, 주어진 것을 격렬히 선택하는 삶"을 제시한다. 이는 동양 철학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개념과도 맞닿는 지점이다. 인간의 판단과 해석을 거치지 않은 생존의 방식은, 우리가 잊고 있는 존재 방식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를 제시한다.
문명의 산물로서의 인간 주체, 그 전복 가능성
위즐은 사냥도, 탐욕도 아닌 ‘존재 그대로의 살아 있음’이다. 딜러드는 이 "무심(無心)의 미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간인 ‘자기서사’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녀의 사유는 장-뤽 낭시의 말처럼 “존재란 끊임없이 무너지는 관계”라는 전제로 확장된다. 만약 삶이 존재를 ‘목적화’하는 과정이라면, 위즐은 그 이전의 삶—목적이 아니라 필연에 밀착된 존재로서의—을 환기시킨다. 결국 이 글은 우리로 하여금 묻게 한다: “우리는 필연을 감내하는 존재인가, 혹은 끊임없이 필연을 회피하며 안락함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가?”
완벽하게 ‘살아 있음’을 경험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애니 딜러드의 「Teaching a Stone to Talk」나 「The Abundance」를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가까운 공원이나 자연 속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해석하려 하지 말고 지각해 보라. 그 경험 자체가 살아 있음의 훈련일 것이다. 동시에 ‘존재’에 대한 다른 작가의 사유—예컨대 메리 올리버의 자연시나 레이첼 카슨의 환경문학, 소설가 김훈의 감각 서사 등—과의 비교적 독서를 통해 감각과 사유의 스펙트럼을 넓히자.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무심히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 보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당신을 문화적 주체로 만든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이 시대에 내가 본능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