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금기의 모험, 멜 브룩스 영화 세계 – 장르 해체와 코미디의 문화적 저항성 탐구
“이제 누가 조롱할 것인가?” 멜 브룩스(Mel Brooks)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떠오르는 질문이다. 그는 단순한 코미디언이 아니었다. 브룩스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장르 영화의 규칙을 해체하고, 시대의 금기를 웃음으로 응시한 현대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전복적인 예술가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들은 코믹함 너머로 사회적 고질(固疾)을 파헤치고, 시청자에게 냉소적이면서도 무력하지 않은 웃음을 던져주었다. 이번 랭킹 기사(Thought Catalog, 2025)에서 소개된 브룩스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으며, 우리는 왜 아직도 그의 영화가 문화적 유산이자 논쟁의 장으로 기능하는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1. 장르의 해체와 패러디의 정치성
브룩스의 영화는 서부극(“Blazing Saddles”), 호러(“Young Frankenstein”), 역사 서사(“History of the World, Part I”), SF(“Spaceballs”) 등 고유한 장르 상징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단순히 장르 영화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 장르가 사회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뒤틀었다. 예를 들어 “Blazing Saddles”는 백인 중심의 서부 영화에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정형화된 인종 인식을 조롱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한 “패러디는 상이한 맥락의 코드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치적으로 기능한다”는 명제가 브룩스의 영화에서 분명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2. ‘웃음’이라는 저항 기제 – 타부와 도덕성 마주하기
1967년 데뷔작 “The Producers”에서 나치 독일을 소재로 삼아 뮤지컬 희극을 만든 브룩스는 당시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히틀러를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설정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공포와 억압의 대상마저 희화화함으로써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웃음은 억압된 진실이 다시 돌아오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브룩스의 영화적 전략은 금기를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그 이면의 굴레를 인식하게 한다.
3. 대중문화 패러디와 소비 사회 풍자
“Spaceballs”와 “Robin Hood: Men in Tights”는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블록버스터 문화를 전면적으로 조롱한다. 브룩스는 “스타워즈”와 같은 대중 신화를 단순히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 사회의 판타지를 ‘희화된 이미지’로 되돌려줌으로써 관객에게 거리감을 부여했다. 2020년대의 ‘디즈니 피로 증후군’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의 시선은 장르의 반복성과 상업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는 볼터의 풍자 문학 전통을 현대 영상 매체로 계승한 셈이다.
4. 반복적 협업과 배우의 ‘몸’이 가지는 코미디 언어
제네 와일더, 마들린 칸, 클로리스 리치먼 등 동일한 배우들의 반복된 협업은 브룩스 영화의 미학적 지문이다. 이들의 과장된 표정, 신체 놀이에 가까운 제스처는 몸 자체가 언어화되는 희극 전통(코메디아 델라르테, 버라이어티 쇼 등)을 계승하고 확장시켰다. 특히 “Young Frankenstein”에서 와일더가 보여주는 신체 과잉의 연기는, 코믹함과 광기, 인간 본능의 아이러니를 모두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웃음을 넘는 ‘몸의 철학’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5. 현대 코미디 안에서 브룩스의 그림자
오늘날 키 앤 필(Key & Peele), 사차 바론 코헨(Sacha Baron Cohen), 트레버 노아 등의 정치적 코미디는 모두 브룩스의 유산을 직간접적으로 이어받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검열과 충돌하는 시대에, 브룩스의 유머는 “무엇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그의 영화는 여전히 논쟁적이며, 그로 인해 더욱 현대적이다. 미디어 이론가 헨리 젠킨스는 대중 문화가 비판의 장이어야 한다고 했고, 브룩스는 바로 그 장을 일찍이 마련한 인물이다.
지금 우리가 웃고 있는 그 순간, 과연 무엇에 웃고 있는가? 우리의 웃음은 사회의 구조를 되짚는 촉매일까, 혹은 현실 도피의 수단일까? 멜 브룩스는 이 질문을 남기며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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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스의 영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을 던지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된 영화 목록을 직접 감상하며, 고전 장르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시대적 타당성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영화 외에도 관련된 비평서(예: 『웃음과 잉여』, 이상길 저 / 『장르와 정치』, 김성욱 저)를 참고하면 더 심도 깊은 분석이 가능하다. 혹은 친구들과 함께 브룩스 영화 상영회를 만들어보고, 각자 어떤 웃음 포인트에서 의미를 읽었는지 토론하는 것도 감상의 또 다른 층위를 제공할 수 있다. 예술과 문화는 소비의 대상이 아닌, 사유와 응시의 장이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