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트와 저작권 전쟁 – 창작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우리는 ‘창작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2024년, 인공지능(AI)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의 주변부에 머물지 않는다. 회화, 음악, 문학 등 전통 예술의 영역에서 AI는 점점 ‘창작자’의 위상을 획득하며, 창작과 알고리즘 사이의 경계선을 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처럼 기술이 창작의 전면에 등장할수록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질문도 많아진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은 과연 예술인가? 그 ‘창작자’는 누구며, 저작권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최근 벌어진 AI 아트 생성 도구의 이미지 이용 논란은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예술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AI 알고리즘, 창작의 도구인가 주체인가?
AI 생성 도구들의 작동 방식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기존 예술작품의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수많은 기존 작가들의 작품이 무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스타일화된 결과물은 원작자의 개성을 모방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무형의 도제 학습" 방식으로 소유권 없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작가들이 AI 이미지 생성 플랫폼을 상대로 소송에 돌입하면서, AI 아트는 본격적인 법적 공방의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출처와 처리 방식, 그리고 생성된 결과물의 저작권 귀속 문제는 이제 단순한 IT 산업의 이슈가 아니라 예술 생태계 전반의 질서를 재편할 문화정치학적 사안이 되었다.
예술의 기준은 감성과 창의성인가? 또는 연산 능력인가?
AI 예술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소유권’ 문제를 넘어선다. 무엇이 예술인지, 그리고 누가 예술가인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개념예술(conceptual art)**이 물성을 지닌 오브제보다 아이디어 그 자체를 중시했던 전통을 이어볼 때, AI가 만든 예술도 인간의 ‘의지’나 ‘컨셉’에서 시작된다면 일종의 협업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AI가 생성해낸 이미지들이 인간의 감각과 정서를 자극하면서도, 그 창의 과정에 인간의 개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 이는 인간 고유의 창작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예술학자 캐롤 딜레니(Carol Delaney)는 예술을 “의도(intention)와 표현(expression)의 산물”이라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AI는 본질적으로 ‘의도’를 가질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AI의 작업은 ‘표현’은 있을지언정, ‘의도’는 부재한 창작물인가? 이는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정의해왔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정의가 제시될 수 있을지를 다시 묻는다.
스타일의 사유화와 창작자의 권리
당장의 저작권 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갈등은 바로 ‘스타일의 표절’ 문제다. 기존 저작권법은 이미지나 텍스트처럼 물리적으로 고정된 ‘저작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개인의 예술적 스타일은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그러나 AI는 이제 특정 작가의 색채, 구도, 필치 같은 작품의 내적 언어를 정밀하게 모방할 수 있다. ‘그 작가의 그림처럼 보이는 그림’이 넘쳐나게 된 지금, 우리는 스타일 또한 일종의 저작권 대상으로 보고 법적 틀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방향은 예술적 독창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창작자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자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예술가의 명성권(droit moral)’을 존중하며, 창작자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행위도 도덕적 침해로 간주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창작의 민주화인가, 노동의 침식인가
AI 아트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창작 민주주의의 환상을 제공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예술가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이중적인 얼굴을 지닌다. 창작물의 급격한 자동화와 대중화가 가져온 그늘은 예술노동의 탈가치화다. 수년간 축적돼온 인간 예술가의 경험, 고유한 직관, 장인정신은 상업성과 모방 가능성 앞에서 위태로운 위치에 놓여 있다.
또한 수많은 기업들이 AI 생성 이미지를 통해 포스터, 일러스트, 광고물 등 상업 콘텐츠를 대체하면서, 예술가들의 노동 환경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AI의 알고리즘은 누구의 노동을 빌려 훈련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노동의 기여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기술의 진보가 예술의 진화를 견인하는 동시에, 그 기반인 인간의 창작 노동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우리는 예술의 주체를 다시 묻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AI와 예술의 접점은 단지 기술이 낳는 파편적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통해 인간다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문화사적 질문이다. AI의 참여는 예술을 새롭게 열어젖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감정’, ‘서사’, ‘의도’ 같은 요소들이 창작의 본질로서 얼마만큼 고유한 힘을 가졌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현상은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까? 우리는 진정한 창작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방식은 어떤 윤리적, 사회적 기준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독자들은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포함된 최근 전시나 논란 중인 비평에 관심을 가지며, AI가 관여한 예술작품에 담긴 의미를 스스로 분석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관련 법제도의 흐름과 국제 사례를 비교하며, 향후 창작 경제의 방향에 대한 비판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는 것도 예술 향유자이자 문화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실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