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근거지, 지켜야 할 진동” – 영국 인디 음악 베뉴 생태계가 건네는 문화적 경고음
코로나 이후 붕괴 직전까지 몰리던 영국의 소규모 인디 음악 공연장(Grassroots Music Venues, 이하 GMV) 생태계가 2025년 한 해 동안 다소 안정세를 보이며 회복 가능성을 드러냈다. 뮤직 베뉴 트러스트(Music Venue Trust)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문을 닫은 GMV 수는 9곳으로, 2018년 이후 가장 적은 감소폭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가 의미하는 ‘회복’은 단순히 생존 그 이상을 요구한다. 공연장의 문화적, 경제적 가치가 재정의될 시기인 지금, 우리는 이 공간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예술적 감수성과 거시 문화적 시선으로 되새겨야 한다.
1. 인디 공간의 연착륙, 통계 뒤의 위태로운 생존 조건
69개의 공연장이 GMV로 복귀하며 일정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절반 넘는 공연장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평균 수익률은 겨우 2.5%에 머무른다. 고용 인원은 지난해보다 22%나 감소했고, 현장의 예술 노동자들은 보험료 및 구조조정의 압박 속에서 떠나고 있다. 뮤직 베뉴 트러스트는 대다수 공연장이 한 번의 경제적 충격에도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생태계의 기반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2. '문화 거리두기'의 반작용, 지역성과 라이브 경험의 위기
영국 전역의 175개 지역에 최소 하나의 GMV가 있음에도 상당수는 유의미한 투어 공연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는 팬데믹 이후 심화된 라이브 음악 유통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반영하며, 지역성과 현장성의 가치가 상업성과 교통 편의 앞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문화 연구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적 생태계는 소규모 공동체의 실험과 실패 속에서 진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GMV는 그 실험의 실험실이자 청중과 창작자가 함께 호흡하는 드문 현장이기도 하다.
3. '1파운드 문화 기부금'의 정치, 기업의 책임은 자발적인가 법제화 대상인가
현재 런던 O2 아레나와 일부 아티스트(샘 펜더, 케이티 페리 등)가 자발적으로 도입한 '1파운드 예술 기부금'은 공연 티켓에서 1파운드를 추가 걷어 GMV 지원에 쓰자는 취지다. 이는 케이팝 팬덤의 '서포트 문화'와 결이 유사하지만, 자발성에만 기대는 모델은 산업 구조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전체 시장의 66%를 점유한 라이브 네이션은 아직 참여하지 않았다. GMV를 둘러싼 지속 가능성 담론은 이제 기업의 윤리와 공공정책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4. 공연장의 의미 재정의 – ‘소리’만이 아닌 ‘공동감각’의 공간
GMV는 밴드 데뷔 공연, 장르 실험, 팬덤의 태동 등 수많은 문화적 ‘첫 순간’이 축적되는 곳이다. 예술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음악 현장을 특정한 음악의 생성 조건으로 이해하며, 관객과 공간, 물리적 인프라가 모두 창작 공동체의 일부라고 강조한다. 공연장이 줄어드는 것은 단지 무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생산과 향유가 동시에 위축되는 구조적 쇠퇴를 의미한다. GMV는 오늘날 첨단 기술 기반의 스트리밍 환경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문화적 ‘현존의 경험’을 제공한다.
5. 무엇을 지킬 것인가: 위기가 묻는 문화정책의 품격
뮤직 베뉴 트러스트는 정부에 ‘에이전트 오브 체인지’ 정책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기존 공연장 인근에 신축 주거시설이 들어설 경우, 소음 문제를 새 개발자가 책임지는 제도다. 이는 단순 소음 관리가 아니라 공연장이 도시계획과 공간정치 속에서 어떤 구성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나아가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 지역 문화 인프라에 대한 국가의 투자 방향성도 논의되어야 한다.
영국 인디 음악 공연장의 상황은 단지 외국의 음악 산업 뉴스가 아니다. 오늘날의 예술과 문화가 자본, 기술, 정치의 깊은 교차로 위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는 문화적 자각을 요구받고 있다.
문화 향유자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제안:
① 국내 인디 공연장이나 DIY 전시 공간을 직접 방문하고 SNS 인증이 아닌 감각의 기록으로 남겨보자.
② '문화공간의 지속 가능성' 관련된 국내 사례(예: 플랫폼창동61 폐관)에 대한 기사나 보고서를 찾아 읽어보자.
③ 이 글의 이슈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고 관련 의견을 나누며 토론해보자.
④ 각자의 지역에서 문화행사가 얼마나 다양한지 조사해보고, 지역 기반 예술가들의 활동을 응원하거나 연대할 방법을 고민해보자.
문화는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시선으로 확장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GMV 이야기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음악’이 아니라 ‘공공예술성과 공동체의 가능성’이다.
#휴먼피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