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와 부성애, 그리고 불안한 도시의 공존 – 마커스 위커의 에세이를 통해 본 예술의 정서적 중층성
2026년 1월, 미국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시인 마커스 위커(Marcus Wicker)의 에세이 「A Bluff City Blues」는 한 도시, 한 개인, 한 장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예술이 어떻게 시대 정신을 담아내고, 또 그것을 넘어서려 시도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문학적 사례다. 겉으로 보기엔 사회적 긴장 속 축제 현장의 사적인 단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글은 현대적 '블루스'가 단지 음악 장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적 감정과 공적 현실이 접합하는 문화적 은유라는 것을 날카롭게 증식시킨다.
이 글에서는 위커의 글을 중심으로, 우리가 이 시대에 예술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야 하는지를 논의해보려 한다. 이 글이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 평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예술은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느끼고 말하는가?”
■ 정동과 음악, 블루스가 말하는 것
블루스는 오래도록 흑인 미국인의 정서적 저항이자 자기 진술의 수단이었다. 위커의 글에서도 그 기원이 살아 있다. 그는 임신을 둘러싼 불안과 상실, 도시의 무력감,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블루스'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낸다. 그가 표현하는 “2.5톤의 고통”과 “심장의 새로운 판막이 자동으로 조절된다”는 서술은 정동 감각(affect theory)의 전형적 표출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가 말한 ‘정서와 감각의 합체된 응축지점’으로서의 예술 경험에 부합한다.
결국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사회적으로 재전유하는 수단이다. 멤피스 야외 음악축제에서의 순간은 단순한 퇴피가 아닌, 역사적 기억과 현재의 불확실성을 연결하는 순간이 된다.
■ 도시 불안과 예술의 위치
에세이 초반, 위커는 “정체불명의 차량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무장세력”이 도시를 점거한 풍경을 그리고, 이는 도시의 출현이자 일상의 공포로 그려진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도시공간이 더 이상 아늑함이나 문명의 상징이 아니라 감시와 위기의 공간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정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말한 ‘신자유주의 도시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위커는 그 속에서도 예술의 역할을 새긴다. 즉, 축제라는 공동의 감정 공유 장치는 도시의 균열을 봉합하고, 개인의 서사를 사회적 기억과 연결시키는 힘으로 재기입된다. 그는 아버지가 되는 개인적 전환과 도시가 겪는 집단적 충격을 병치시키며, 예술이 어떻게 공적 스펙터클 속 사적 발성을 가능케 하는지 보여준다.
■ 부성애와 상실의 언어, 그리고 미래
위커와 아내는 앞선 두 번의 유산을 겪은 후 다시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끼는 부성애는 생물학적 책임이나 전통적인 보호 역할을 넘어서, 감정의 불완전성과 상처받음까지 포용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구축을 시도한다.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상태, 동시에 눈물겹도록 진심인 순간”들은 현대 가족 서사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표현형 중 하나다.
비평가 bell hooks는 ‘사랑은 행위이며, 감정이 아닌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위커는 감정 그 자체를 견디고, 상상하고, 해석하려 애쓴다. 결코 상황을 미화하지 않되, 그것을 삶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단지 문학적 태도를 넘어서, 우리가 예술작품을 어떻게 감정적으로 소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윤리적 제안이기도 하다.
■ 롱리드 저널리즘의 문화적 기능
위커의 작품을 소개한 롱리드(Longreads)는 단순한 긴 기사 사이트가 아닌, 현대 저널리즘이 감정·문학·사회·예술을 유기적으로 엮는 하나의 ‘공공적 서사실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지속적으로 긴 글을 소비한다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느림의 문화’를 실천하는 것이며, 이러한 플랫폼의 존재는 타자의 감정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학자 제이 로젠(Jay Rosen)은 “독자가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은 곧 민주적 감정 구축의 과정”이라 평가한다. 긴 글은 느림, 숙고, 감정이입을 전제로 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 우리는 어떤 감각을 오늘 예술에 허락하고 있는가?
“무장한 경찰, 불안한 도시, 그리고 블루스.” 위커의 에세이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생명과 감정, 그리고 예술을 마주하고, 그 모든 감정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는다. 현대 예술은 이처럼 사회의 상처를 드러내자고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감정의 구조—특히 흐릿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지속적으로 깊이 이해하려는 수행적 실천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멤피스 블루스 음악의 음원을 찾아 그 감정의 무게를 음미하거나, 롱리드 플랫폼에 올라오는 다양한 긴 글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감각하는 훈련을 시도해보길 권한다. 또한 가족, 도시, 사회적 불안이라는 소재를 예술은 어떻게 발화시키는지를 고민하며, 일상 속 책상 위에서라도 서서히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감정은 느끼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하고 나누는 기술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예술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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