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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 삶을 응시하는 느림의 시학

이은선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 삶을 응시하는 느림의 시학

“평범한 날들의 시학”이 건네는 느림의 미학 – 삶의 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

속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느림’은 어쩌면 잊힌 정서일지도 모릅니다. 이은선 시인의 신작 시집 『평범한 날들의 시학』(반달뜨는꽃섬 출판)은 그런 잊힌 감각을 다시 깨우는 정돈된 숨결처럼 다가옵니다. 이 시집은 거창하거나 화려한 서사 대신, 일상의 틈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과 결핍, 그 너머에 있는 생의 은빛 결을 섬세히 붙잡아냅니다. “시간의 숨결보다 한 박자 느리게, 생각의 그림자보다 한 걸음 뒤로” 걷는 시인의 속삭임은 독자에게 멈춤의 미학을 되묻습니다.

이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스쳐 지나간 사물들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아야 할까요?


1. 사라짐을 기록하는 시인의 언어 – ‘느림의 미학’ 복원하기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삶의 가장 평범한 사물들—먼지 쌓인 커튼, 금이 간 벽, 낡은 문고리—속에 담긴 언어를 복원합니다. 이은선 작가는 일상의 가장자리에 쌓여 잊혀가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새깁니다. 그의 시는 ‘일상의 사물’과 ‘존재 흔적’, 즉 ‘퇴색된 것들’에 대한 섬세한 해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작업은 단지 회고가 아니라 삶의 근원을 묻는 조용한 생명학적 질문입니다.

예술평론가 윤성대는 “현대시에서 사물의 존재론적 환기는 더 이상 장식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불안을 드러내는 핵심 도구”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은선의 시는 이를 실천하는 한 예이며, 잊힌 물질들의 이야기로 ‘살아 있음’의 윤기를 되살립니다.


2. 애도가 아닌 헌사 – 사라진 것들보다 남은 것들의 비의(秘義)

이 시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인 애도의 서정적 흐름과 달리, 이은선의 시는 무엇이 사라졌느냐보다, 남아 있는 것들이 주는 빛을 바라봅니다. 이 시선의 전환은 시적 감수성의 성숙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시인은 깨진 화분 속 피어난 꽃을 통해 상처를 슬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 틈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윗겹 현실을 읽는 감성에서 내려가, 존재의 균열 속에 깃든 ‘존엄성’을 되묻는 시학으로 확장됩니다.


3. “관조와 기다림” – 현대 독자와의 정서적 접점

이 시집은 독자에게 즉각적인 감정을 유발하기보다는, 낮은 목소리로 침묵을 권유합니다. 시인은 묻지 않고, 기록하기보다 기억하는 태도를 고수합니다. 이는 독자에게 자신만의 ‘잊은 무엇’과 연결되는 감정의 통로를 자연스럽게 열도록 돕습니다.

특히 현재의 독서 환경이 ‘속도 정보 시대’에 잠식된 현실을 감안할 때, 이은선의 시는 속도의 반대말로서 존재하는 ‘예술로서의 시간’을 상기시키는 자기 성찰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말한 “느림과 응시를 통한 관계의 복원”이 떠오르는 시점입니다.


4. 출판사 ‘반달뜨는꽃섬’과의 시적 컨텍스트 – 사유의 공동체

『평범한 날들의 시학』이 더욱 특별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출판사 ‘반달뜨는꽃섬’이 이 책을 품었다는 점입니다. 이곳은 소리 없는 언어, 흐름 너머의 감각을 중심에 두는 문학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단지 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사유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한 줄의 시가 한 시대의 침묵을 흔들 수 있다”는 철학은 이 시집에도 깊게 배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은선의 시는 단지 담담한 서사라기보다는, 소멸을 기억하는 예술 행위로서의 시, 그 자체의 의의를 갖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평범한 날들의 시학』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물과 감정 속에서, 멈추고 응시하는 법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을 통해 독자는 다음과 같은 문화적 활동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 매일 한 편의 시를 손으로 옮겨 적으며 감각을 되돌려보기
  • 일상 속 ‘퇴색된 물건’을 관찰하며 나만의 시적 소재 찾기
  • 시집 속 이미지와 유사한 장소나 디테일을 사진으로 기록해 ‘느림의 시선’ 실천하기
  • 류시화, 황경신 등의 느림과 관조를 다룬 시집, 에세이로 시적 감수성 확장하기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멈춘 독서가 아니라,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가장 사적인 산책입니다. 낡아버린 골목의 벽면 앞에서, 혹은 먼지가 쌓인 커튼 자락에서 문득 멈춘다면—그 순간이 바로 시인이 건네는 조용한 기적의 시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