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잠든 왕을 깨우다 – 대하소설 『곤지왕』이 전하는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
한국 삼국사에서 백제는 그 문화적 찬란함과 함께 다수의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백제 제21대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 무령왕의 부친으로 추정되는 인물 '곤지'. 그는 역사의 기록에서 미처 주목받지 못한 왕족이었지만, 진현석 작가의 대하소설 『곤지왕』(좋은땅출판사, 728쪽)을 통해 근엄한 리더의 초상으로 재탄생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역사 인물의 복원이 아니라, 권력의 이면과 리더십의 본질을 탐색하는 문학적 시도라 할 만하다.
『곤지왕』은 단지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전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침묵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이끈 진정한 리더의 재발견이다. 곤지는 왕이 아니었으나, 시대를 움직인 정신적 왕이자 조용한 권력의 화신이다. 이 인물이 왜 지금, 우리 시대의 독자들에게 다시 소환되어야 하는지, 그 문화적 가치는 무엇인지의 답을 이 글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1. 실록이 말하지 못한 왕족 – ‘곤지’라는 인물의 문학적 복권
역사 텍스트에 단 한 줄로 남아 있는 인물, 곤지는 실존의 경계에 서 있다. 『곤지왕』에서 그가 걸어가는 여정은 다름 아닌 ‘무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삼국의 격돌과 왕실 내부 분열, 충성과 배신이 교차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곤지는 침묵하지만 결코 주변인이 아니다. 그는 실패와 상실을 품어내며 백제 왕통의 안정에 필수적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과거라는 어두운 캔버스 위에 절제·충정·희생이라는 보석 같은 미덕을 덧입혀 곤지를 새롭게 그려낸다.
2. 역사와 상상의 조우 – 백제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곤지라는 인물에 머물지 않고, 백제의 문화・정치 지형도 전체를 입체적으로 담아낸다는 점이다. 고구려에서의 성장과 백제로의 귀환, 이후 그의 정치적 행보는 당대 삼국 간의 세력 균형과 백제 내부의 권력 맥락까지 촘촘히 엮어낸다. 진현석 작가는 실화에 기반한 철저한 연구를 토대로, 역사 속 공백을 문학적 상상과 내적 논리로 메운다. 이 작업은 단순한 픽션이 아닌, 대안적 역사서술이자 문화사적 복원의 작법에 가깝다.
3.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리더십
『곤지왕』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만들어내며, 전체의 균형을 위한다'는 리더상이다. 이는 현대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리더십이 공격성이나 독단으로 이해되는 시대에, 곤지의 ‘윗사람됨’은 침묵의 책임감, 권한 없는 영향력, 타인을 위한 결단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미학이 아닐까.
4. 곤지, 조연에서 주연으로 – 문학이 가진 역사적 정의의 힘
백제사의 주연은 보통 무령왕이나 근초고왕이었고, 곤지는 늘 그 주변부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주연과 조연의 경계’를 허문다. 문학은 정통사가 보지 못한 시선을 가능케 하며, 시대가 부여한 무게보다 더 큰 의미를 인물에게 부여할 수 있는 도구다. 곤지를 다시 조명하는 이 시도는 문학이야말로 잊힌 존재들의 정당한 자리를 복원하는 힘이 있음을 증명한다. 『곤지왕』은 그 자체로 백제사의 현재적 해석이며, 문화적으로는 ‘역사 인권 회복의 한 사례’로도 읽힌다.
728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곤지왕』은 함몰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박진감, 인물의 내면 묘사, 정치 드라마가 주는 긴장감이 흡인력을 더하며, 한 편의 무게 있는 드라마처럼 읽힌다. 특히 백제사에 관심이 있거나, 묻혀 있던 인물에 대한 재조명에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만나보아야 할 작품이다.
지금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구마 같은 현실을 풀어낼 감자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곤지왕』은 그 갈증을 해소해줄 단단한 스토리다. 온라인 서점(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에서 바로 주문할 수 있으며, 역사 소설 애호가나 리더십 교육자에게도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책을 손에 들었다면 곤지가 왜 ‘왕이 아니지만 왕 같은 존재’로 불리는지, 그의 선택이 백제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되짚어보자. 그리고 오늘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곤지 같은 역할은 누구일까, 혹은 나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질문이 문화의 깊이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