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괴물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묻는 인간성 – 디지털 시대의 괴물 이야기와 시네마의 존재론적 질문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야심작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고전의 재해석을 넘어선다. 이는 감독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하고, 21세기 관객에게 ‘괴물과 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다시금 묻는 거대한 문화적 성찰이자 기술 시대에 대한 한 편의 경고문이기도 하다. 델 토로는 이 작품을 헌신적으로 준비해 왔고, 이는 그가 “태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다소 과장된 수사를 받을 만큼 자기 고백적이다.
하지만 이 프랑켄슈타인은 단지 과거의 영광을 반복하거나 고전 회귀의 한 갈래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오늘날의 인간이 기술과 욕망을 통해 자신의 창조물을 어떻게 대하고 소외시키는지를 조명하며, 현대의 ‘A.I. 괴물’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얼마나 날카롭게 비추는가?
1. 괴물의 인간성과 인간의 괴물성
델 토로가 일관되게 파고드는 테마는 바로 ‘괴물의 연민’이다. 그는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등에서 반복적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에 대한 감정이입을 추동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가혹하게 거부당한 창조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단지 흉측하거나 파괴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무책임함,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파열된 윤리 의식을 되씹게 한다. 델 토로는 괴물을 단순한 상징적 틀이 아닌, 철학적 주체로 구현해냈으며 이는 메리 셀리의 원작에 대한 현대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 괴물은 단지 생명 창조에 실패한 과학의 부산물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고 언어를 배우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존재이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자기 인식적 삶의 모델로 제시된다. 그가 읽는 《실낙원》은 신화적 천사와 인류 퇴락의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반추하는 거울이 된다. 과연 이 괴물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주체일 수 있는가?
2. 기술 신화와 넷플릭스의 창조자 컴플렉스
흥미롭게도, 영화 속에서 괴물 창조를 후원하는 캐릭터 하를란더는 실제 테크 산업의 ‘벤처 자본가’를 연상시킨다. AI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빅테크의 야망은 프랑켄슈타인 신화를 실현 가능한 과학 기술로 직조하고 있으며, 델 토로는 이를 단순히 은유로 넘기지 않는다. 실제로 작품 전체가 넷플릭스라는 스트리밍 거대 자본에 의존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하를란더와 넷플릭스가 묘하게 중첩되는 지점이다.
이를 통해 델 토로는 스스로가 처한 제작 현실과 예술적 야망 사이의 충돌을 고백한다. 완벽하게 만들어냈지만 플랫한 시각 경험으로 귀결된 이 ‘디지털 괴물’은 시네마라는 예술 형식을 집어삼킨 스트리밍 시대의 아이러니다. 디지털로 최적화된 서사는 과연 극장이라는 공간성을 거치지 않고도 ‘영화’라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프랑켄슈타인이 던지는 마지막 메타적 화두다.
3. 회고적 유산으로서의 예술 경로 – 모든 델 토로의 흔적들
영화 속에는 델 토로의 필모그래피를 아우르는 수많은 셀프 오마주가 숨겨져 있다. 《크로노스》의 천주교적 상상력, 《지옥소년》 시리즈의 괴물-인간 하이브리드 정체성, 《악몽의 골목》의 인간 심연 탐구 등은 프랑켄슈타인 신화에 대한 문화 변주로써 재출현한다. 특히 날개 달린 붉은 천사가 나타나는 장면은 미학적으로도 그의 심장부에 위치한 시각적 오브세션이다.
이 작품은 감독 개인의 문화적 트라우마와 욕망이 공존하는 내면의 지도이자, 고전 서사에 덧입힌 정서적 고백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이 개인적 체험은, ‘괴물’이라는 문화적 기표가 시대별로 다른 상징 체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역으로 환기시킨다. 1931년 보리스 칼로프의 괴물이 산업화 시대의 두려움을 담았다면, 오늘날의 괴물은 디지털과 탈인간성의 불안을 대면하고 있다.
4. 시청각의 변형: 영화는 더 이상 극장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고전적 서사의 레이어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해 ‘리사이징’ 되었다. 관객은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혹은 모바일 화면을 통해 이 괴물과 조우한다. 비평가 저스틴 창은 이를 “기술에 의해 손상된 시네마적 경험”이라 지적하며, 이 영화가 본래 의도한 시각적 특권과 몰입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시네마는 과연 어디에서 ‘영화’로서 정의될 수 있는가? – 이 오래된 질문은 OTT 시대의 급진적 재구성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결론 및 문화 향유 지침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현대인의 공포와 책임을 정밀하게 조각한 ‘괴물’을 통해 우리 시대의 윤리적 거울을 제시한다.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은 이제 “누가 창조자인가?”, “기술은 삶을 되살리는가 혹은 소외시키는가?”라는 형태로 진화했다.
이 영화를 본다면, 고전 원작과 함께 델 토로의 주요 필모그래피—특히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악몽의 골목》—를 함께 감상해보자. 또한 Mary Shelley의 소설과 John Milton의 『실낙원』을 병행 읽는다면 영화의 주제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을 둘러싼 시네마와 스트리밍의 경계,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윤리성, 인간의 본질에 대해 동시대 문화 소비자로서 디지털 커뮤니티나 문화 비평의 장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나누어보자. 인간은 과연 자신의 괴물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우리는 그 질문 앞에 서 있다.